글·사진 김훈규

고향사랑기부금을 활용한 취약계층 친환경 농산물 꾸러미 지원사업 포장 현장.
고향사랑기부금을 활용한 취약계층 친환경 농산물 꾸러미 지원사업 포장 현장.

  기후위기가 가속화되면서 농민과 소비자, 그리고 행정 모두가 전에 없던 불확실성과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미증유의 위기 속에서 학교급식을 비롯한 공공급식 영역은 단순한 한 끼 식사 제공을 넘어, 지역 농업을 지키고 사회적 안전망을 작동시키는 핵심 정책 과제로 떠올랐다. 그동안 우리는 ‘공공급식을 어떻게 잘 운영할 것인가’라는 효율성의 문제에 집중해 왔지만, 이제는 ‘공공급식이 왜 존재해야 하는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다시 던져야 할 때다. 전국의 지자체가 저마다의 출발선에 서 있는 지금, 현장의 경험을 바탕으로 공공급식의 새로운 존재 이유와 지향점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왜 시장에만 맡길 수 없는가 – 공공조달의 존재 이유
  어느 친환경농산물 산지를 방문한 날의 일이다. 이른 봄 냉해로 잎채소의 품질이 떨어지고 출하량도 예년의 절반으로 줄었다는 농민의 하소연을 듣고 돌아온 그날, 나는 지역 학교 영양(교)사들의 걱정 섞인 민원을 접해야 했다. 같은 날 같은 사안을 두고 산지에서는 “어지간하면 그 정도의 품위의 농산물은 받아주면 안 되겠느냐? 가격도 너무 낮은데······.”라는 이야기가, 급식 현장에서는 “아무리 그래도 농산물 원물 상태가 이러면 어떻게 하느냐?”는 이야기가 엇갈렸다. 이 짧은 하루의 경험이야말로 공공급식이라는 시스템이 왜 필요한지를 압축해서 보여준다.
  농산물은 공장에서 찍어내는 공산품이 아니다. 변덕스러운 날씨 한 번, 병해충 한 번에 생산량이 요동치고, 그 진폭은 고스란히 가격의 급등락으로 이어진다. 문제는 이 불확실성을 온전히 떠안는 쪽이 대개 힘없는 생산자라는 점이다. 배추 한 포기 값이 폭락하면 밭을 갈아엎는 농민의 뉴스가 해마다 반복되고, 반대로 값이 폭등하면 소비자와 급식 현장이 비명을 지른다. 시장은 이 진폭을 완충할 유인이 없다. 변동성이 클수록 오히려 유통 마진이 커지는 구조 탓에, 생산자와 소비자는 늘 양쪽에서 손해를 보는 처지에 놓인다.
  바로 이 지점에서 공공조달의 존재 이유가 선명해진다. 학교급식, 군 급식, 어린이집 급식, 임산부 꾸러미처럼 매일, 매주 일정한 물량이 안정적으로 소비되는 공공 수요는 농업에 있어 일종의 안전망이다. 생산자 입장에서는 예측 가능한 판로가 확보되면 친환경 인증이나 계약재배처럼 당장은 수익성이 낮아 보이는 전환에도 용기를 낼 수 있다. 실제로 경기도의 여러 산지에서는 학교급식이라는 안정적 소비처가 있었기에 관행농에서 유기농·무농약 등 친환경 인증 재배로 전환할 수 있었다. 반대로 그 판로가 흔들리면 애써 쌓아온 친환경 생산 기반도 함께 흔들린다.
  또한 공공조달은 단순히 물량을 소화하는 창구가 아니라, 지역 농업의 다양성·종자·품종 등을 지키는 최소한의 방파제 역할을 한다. 시장은 늘 규모의 경제와 표준화를 요구하지만, 공공급식은 다품종 소량생산 체계를 어느 정도 유지시키며 지역의 로컬푸드 생태계를 지탱해 왔다. 농산물 생산과 소비의 영역에서 공공조달 시스템이 필요한 이유는, 결국 시장이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불확실성과 불균형을 공공이 나누어 짊어짐으로써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를 지키기 위함이다.

기후위기 시대, 밥상이 곧 기후 대응이다
  기후위기는 더 이상 먼 미래의 시나리오가 아니다. 올여름에도 그랬듯이 폭염과 이상기후로 채소 가격이 요동치는 일이 해마다 반복되고, 산지 자체가 북상하며 재배 지도가 다시 그려지고 있다. 이런 시대에 공공급식이 갖는 의미는 단순히 ‘안전한 먹거리 공급’을 넘어선다. 매일 수십만 명의 학생과 장병, 영유아가 먹는 밥상을 어떤 방식으로 채우느냐에 따라 지역의 탄소 발자국과 농업의 지속 가능성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로컬푸드와 친환경 농산물을 공공급식에 우선 배치하는 일은 그 자체로 강력한 기후 대응이다. 산지에서 식탁까지의 이동 거리를 줄여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고, 친환경 농업으로 토양의 건강성을 지키는 기본적인 노력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이에 경기도는 자원 순환과 먹거리 복지를 아우르는 선제적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대표적으로 학교급식 공급 및 전처리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버려지는 농산물 부산물을 버리지 않고 친환경 비닐류 등으로 재활용하는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나아가 2026년 1월 ‘경기도 아까운 농산물 유통 활성화 지원 조례’1)를 발의하고 농산물 부산물 활용을 위한 법적·제도적 근거를 마련하는 등 먹거리 선순환 구조를 제도화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또한 급식 조리·배식 전 깨끗한 상태에서 미리 잔식이 될 만큼의 양을 덜어내어 지역 사회의 취약계층에게 전달하는 복지 연계 모델 등은 버려지는 음식물 쓰레기를 줄임과 동시에 탄소 중립과 따뜻한 먹거리 돌봄을 동시에 실천하는 구체적인 기후·복지 정책의 사례라 할 수 있다. 급식판 위에 놓인 한 끼부터, 그 부산물이 순환하는 방식까지도 다음 세대의 기후 감수성을 길러주는 가장 확실한 교육이 되는 셈이다.
  기후위기는 식량안보의 문제와도 직결된다. 이상기후로 인한 흉작이 반복될수록 안정적인 공급망을 갖춘 공공조달 체계의 가치는 커진다. 위기 상황일수록 시장 논리만으로는 취약계층과 필수 급식 수요를 지켜내기 어렵다. 접경지 군부대나 소규모 어린이집처럼 상업적 유통망이 잘 닿지 않는 곳까지 안정적으로 식재료를 공급하는 공공급식의 인프라는, 평상시에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위기 상황에서 그 진가를 발휘하는 사회적 안전망이다.
  폭염이 절정에 이르렀던 여름, 산지의 출하량이 눈에 띄게 줄면서 학교 현장에서 대체 품목을 급히 찾아야 했던 일이 여러 차례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기후위기가 더 이상 통계 속 숫자가 아니라, 내일 아이들 식판에 무엇이 올라갈지를 결정하는 매우 구체적인 변수가 되었음을 실감했다. 공공급식 담당자로서 우리가 마련해야 할 것은 단 하나의 안정된 산지가 아니라, 기후 변수에도 흔들리지 않는 여러 겹의 대체 공급망이라는 생각을 그때 확고히 했다.

1) ‘아까운 농산물’은 등급 규격에 적합하지 않거나, 농업재해로 외관상 상처가 있지만 품질에는 이상이 없어 유통이 가능한 농산물이다. 기존 ‘못난이 농산물’을 순화한 표현이다.

워크숍 행사로 친환경 학교급식 관계자들이 함께 모였다
워크숍 행사로 친환경 학교급식 관계자들이 함께 모였다

현장의 민낯 – 지게차와 사람, 그리고 벌어진 간극
  그러나 이상과 현실 사이에는 여전히 큰 간극이 있다. 매일 밤, 경기도 광주 곤지암의 경기도 친환경농산물 유통센터에는 학교로 나갈 식재료를 실은 화물차가 줄지어 들어온다. 그 하역과 분류 작업의 상당 부분은 지금도 사람의 손과 지게차에 의존하고 있다. 좁은 통로에서 사람과 지게차가 뒤섞여 움직이는 광경, 무거운 박스를 반복해서 나르며 굽은 허리로 하루를 마감하는 학교급식 현장 노동자들의 모습은 익숙하면서도 여전히 불편한 풍경이다. 전국 곳곳의 물류 현장에서 지게차 협착이나 충돌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는 소식을 접할 때마다, 우리의 급식 물류 현장은 안전한지를 스스로에게 되묻게 된다. 학교급식은 단 하루도 멈출 수 없는 일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정작 그 일을 가능하게 하는 사람들의 안전은 뒷전으로 밀려나기 쉽다. 자동화 설비와 스마트 물류 시스템에 대한 투자가 시급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친환경 농산물 생산자와 급식 현장 사이의 간극도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숙제다. 학교 영양(교)사는 매일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규격의 식재료가 정해진 물량만큼 들어오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자연을 상대하는 농민에게 균일한 규격과 일정한 물량은 결코 쉬운 약속이 아니다. 장마가 길어지면 상추 작황이 흔들리고, 태풍이 지나가면 계약한 물량을 채우지 못하는 일이 생긴다. 이럴 때 생산자는 “자연이 하는 일을 어떻게 규격에 맞추라는 거냐”고 답답해하고, 급식 현장은 “아이들 밥상은 하루도 미룰 수 없다”고 맞선다. 양쪽 모두 틀린 말이 아니기에 이 갈등은 쉽게 풀리지 않는다. 게다가 더 배려해야 할 소농이나 고령 농가일수록 그 여력이 떨어지는 것 같아서 좋은 취지의 제도가 오히려 문턱이 되기도 한다.
  접경지 군부대 급식, 어린이집 급식, 임산부 친환경 꾸러미 사업 역시 저마다의 애로가 있다. 접경지는 물류 거리와 배송 여건이 도심과 크게 달라 신선도 관리에 각별한 노력이 필요하다. 또, 군사시설보호구역처럼 진입이 까다롭거나 소규모로 흩어진 부대까지의 배송 시간을 맞추는 일, 농협 등 중간의 유통구조를 거쳐야 하는 일 등 과정 하나하나가 매번 작은 전쟁이다. 영세한 민간 어린이집은 개별 발주 역량이 부족해 품질과 가격 모두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이기 쉽고, 소규모 시설일수록 다품종 소량 주문을 소화해 줄 산지를 구하기가 더 어렵다. 임산부 꾸러미 사업은 대상자 개개인의 건강 상태와 식습관, 거주 여건이 제각각이라 표준화된 물류 체계로는 세심한 대응이 어렵다는 목소리도 꾸준히 나온다. 결국 공공급식이라는 이름 아래 묶여 있지만, 그 안의 현장들은 저마다 다른 결의 문제를 안고 있는 셈이다.

생산자와 급식 현장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것은 결국 '정보와 신뢰의 인프라'다
생산자와 급식 현장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것은 결국 ‘정보와 신뢰의 인프라’다

새로운 출발선에서, 경기도가 던지는 제안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첫째, 물류 현장의 안전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최우선 투자 대상이 되어야 한다. 위험한 수작업 구간을 자동화 설비와 스마트 시스템으로 단계적으로 대체하고, 안전 인력과 표준 작업 절차를 촘촘히 갖추어야 한다. 급식이 멈추지 않아야 한다는 이유로 사람의 안전이 뒤로 밀리는 구조는 이제 사라져야 한다.
  둘째, 생산자와 급식 현장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것은 결국 ‘정보와 신뢰의 인프라’다. 산지의 작황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물량 변동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예비 산지와 완충 물량을 제도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동시에 고령농·소농 생산자가 다수인 출하회를 위한 현장 지원체계를 개선해, 좋은 제도가 문턱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단순한 행정 서비스가 아니라, 생산자와 급식 현장이 서로의 사정을 이해하게 만드는 신뢰의 다리라고 믿는다. 영양(교)사가 산지의 사정을 미리 알 수 있고, 농민이 급식 현장의 제약을 이해할 수 있는 소통 창구가 상시적으로 열려 있을 때에야 비로소 ‘규격’과 ‘자연’ 사이의 오랜 줄다리기도 조금씩 완화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학교급식·군 급식·어린이집·임산부 꾸러미처럼 흩어진 공공급식 사업들을 하나의 통합 플랫폼 아래 연계해 규모의 효율과 협상력을 동시에 확보해야 한다. 각 사업이 따로 움직이면 물류와 조달의 비효율이 반복되지만, 이를 통합하면 친환경 산지에는 더 안정적인 판로를, 급식 현장에는 더 촘촘한 공급망을 제공할 수 있다.
  넷째, 친환경 인증 전환기에 있는 농가에는 판로 보장을 넘어선 실질적 지원이 필요하다. 전환 초기의 수확량 감소를 보전해 줄 수 있는 계약재배 방식을 확대하고, 서류와 행정 절차를 대행해 줄 인력을 산지 단위로 배치한다면 고령 농가의 부담을 상당 부분 덜어줄 수 있다. 친환경 전환은 개별 농가의 결단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 결단을 끝까지 지켜줄 제도적 뒷받침이 있어야 비로소 지속 가능해진다.
  다섯째, 공공급식은 더 이상 한 지자체만의 과제가 아니다. 기후위기와 식량안보라는 시대적 과제 앞에서 전국의 지자체가 각자의 방식으로 새로운 출발선에 서 있다. 물류 자동화든, 생산자와 소비처 매칭 시스템이든, 친환경 전환 지원이든, 어느 한 지역이 모든 해법을 갖고 있지는 않다. 경기도가 먼저 겪고 있는 시행착오와 그 안에서 찾아낸 해법들이 다른 지역에도 참고가 되기를, 그리고 지자체 간의 경험이 활발히 오가며 서로의 시행착오를 줄여주는 협력의 네트워크가 만들어지기를 바란다. 공공급식은 결국 한 그릇의 밥을 통해 지역과 지역, 세대와 세대를 잇는 일이기 때문이다.

  공공급식은 단순히 예산을 들여 밥을 먹이는 일만이 아니다. 그것은 기후위기 시대에 지역 농업을 지키는 일이며, 위험한 노동 현장에 놓인 사람들을 지키는 일이며, 자라나는 세대에게 지속 가능한 밥상의 의미를 가르치는 일이다. 오늘도 도내 어느 물류센터의 새벽과, 어느 산지의 흙 묻은 손과, 어느 급식실의 분주한 아침이 결국 하나의 밥상으로 이어지는 것을 지켜보며 이 일의 무게를 다시 새긴다. 완벽한 답을 이미 갖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 답을 함께 찾아가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얻은 작은 성찰들을 숨기지 않고 나누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믿는다.
  새로운 출발선에 선 지자체들이 저마다의 현장에서 길어 올린 질문과 답을 서로 나눌 때, 우리는 비로소 ‘공공급식이란 무엇을 위한 제도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조금 더 가까운 답을 얻게 될 것이다.

김훈규필자 김훈규: 경기도농수산진흥원 공공급식본부 본부장
경남 거창군에서 농업(축산업)과 농민 단체, 농업회의소 등에서 활동해 왔다. 농정 거버넌스와 먹거리 정책 개발 활동을 하며 친환경 학교급식 기반 공공 먹거리 체계에 대해 연구했고, 현재는 경기도농수산진흥원 공공급식본부에 재직 중이다.